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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성장중심정책과 분배중심정책 (from 지대넓얕 by 채사장)

Geo 2017. 1. 30. 23:25

 

성장중심정책과 분배중심정책 (from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by 채사장)

- 결국은 성장과 분배의 문제다 -

 

 

 

매우 간단한 모델을 생각해보자. A, B, C가 무인도에 불시착하였다. 아메리카노를 파는 A, B, C는 잊어라. 무인도에 불시착한 A, B, C는 그들이 아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A, B, C는 생김새가 매우 다른데, A는 키가 크고 덩치도 있는 녀석이다. B는 매우 표준적인 키와 몸무게를 갖고 있다. C는 매우 말랐는데, 겉모습만 봐서는 오늘 내일 한다. 셋은 며칠째 굶고 있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눈이 좋은 B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사과나무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 셋은 B가 발견한 사과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C가 뒤처졌지만 어쨌거나 결국에는 도착했다. 사과나무에 도착해서는 가장 힘이 좋은 A가 사과나무를 흔들어서 사과를 얻었다. B와 C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사과는 (a), (b), (c) 모두 세 개다. (a) 사과는 매우 크다. (b) 사과는 중간 크기다. (c) 사과는 말라비틀어져서 먹을 게 없다. A, B, C는 사과 (a), (b), (c)를 나눠 먹어야 한다.

 

어떻게 나누는 것이 가장 공평하고 합리적인가? 우선 B가 말했다.

"공평하게 나눠야 하니까 사과를 모두 세 조각으로 나눈 다음 한쪽씩 가져가자."

그러자 A가 말했다.

"그건 공평하지 않다. 사과를 따는 일은 내가 혼자 해냈다. 게다가 나는 덩치도 큰데 C랑 같은 양을 먹는 것은 불공평하다. 내가 (a)를 먹겠다. 그리고 사과를 발견한 B가 (b)를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C가 (c)를 먹어야 한다."

그러자 C가 말했다.

"아니다. (a)는 내가 먹어야 한다. 너희들은 축적해둔 체지방이 있으니까 한동안 버틸 수 있어도 나는 며칠 후에는 아사할 지경이다. (a)는 나한테 가장 필요하다."

 

각각의 주장 중 어떤 주장이 가장 정당한가? 이 셋의 주장은 우리가 앞에서 논의한 경제체제와 일면 비슷하다. 너무 단순하긴 하지만, 개별 경제체제가 분배 문제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적절하다. 우선 B의 주장은 공산주의적 사고다. 함께 노동하고 함께 똑같이 분배하자는 것이다. 다음으로 A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적이다. 개인의 노력, 능력, 사회적 기여 여부에 따라 재화를 분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C의 주장은 후기 자본주의나 사회민주주의적인 발상이다.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서 분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후기 자본주의나 사회민주주의라고 해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실제로 가장 많은 부를 분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사회는 가능하지 않다. 다만 이들 사회에서는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거나 계층 간의 갈등을 해결하려고 할 때, 그 방향성에 있어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어떤 분배 방식이 더 합리적이고 정당한지에 대한 논의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추가된다.

A, B, C가 사과 분배 문제로 논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셋이 둘러앉아 논쟁에 집중하고 있는데,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뒤를 돌아본 셋은 기겁할 만큼 놀라고 말았다. A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덩치에 무서운 몽둥이를 든 원주민 X가 찾아온 것이다. 알고 보니 여기는 무인도가 아니라 원주민 X가 혼자 살고 있는 섬이었다. X가 말했다.

"사과 내놔라. 그리고 내일부터 너희는 내 노예다. 내일까지 사과를 한곳에 모아두거라."

 

X가 돌아갔다. A, B, C는 당황했다. X의 노예가 되면 탄광에서 평생 노동해야 하고, 탈출도 어려워질 것이다. 모두 고민하고 있을 때, A가 말했다.

"할 수 없다. 어차피 원주민 X와 대결해야 하니, 내가 사과 (a), (b), (c)를 모두 먹겠다. 지금은 먹은 게 없어서 힘을 못 내고 있지만 내가 사과를 모두 먹고 힘을 내면 원주민 X와 충분히 싸워볼 만하다."

C가 말했다.

"싫다. 네가 사과를 모두 먹으나, X가 사과를 모두 먹으나, 나는 어차피 내일이나 모레 굶어 죽을지 모른다. 내일은 내일 일이고, 나는 지금 당장 사과가 필요하다. 일단 우리끼리 사과를 분배해서 먹자."

 

원주민 X로 인해 논의가 조금 달라졌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가? 논의되는 사항을 둘로 줄여보자. <방안1>은 A가 사과를 모두 먹고 힘을 내서 전체를 대표해 X와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C는 굶어 죽을지 모르나, X와 맞서 싸울 수 있다. <방안2>는 A, B, C가 지금 바로 사과를 분배해서 먹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C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 모르나, A, B, C는 모두 X의 노예가 되어 고통스러운 삶을 연명해야 할 것이다. A가 사과를 먹는 <방안1>은 사회 전체의 성장을 위해 C가 희생되는 방법이다. 모두가 사과를 나눠 먹는 <방안2>는 C의 생명을 위해 사회 전체의 성장을 포기하는 방법이다. 어떤 방안이 더 괜찮은 방법인가?

 

 

* Simplification

- 방안1 : "A가 모두 먹는다." 장점: X와 싸워 볼 수 있다. 단점: C가 굶어 죽을 수 있다.

- 방안2 : "A, B, C가 나눠 먹는다." 장점: C가 생명을 연장한다. 단점: 모두가 X의 노예가 된다.

 

 

실제로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겠지만, 이것이 오늘날 논쟁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후기 자본주의의 선택 문제의 본질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우리 사회의 구성요소들을 상징하고 있다. 우선 (a), (b), (c)는 사회적 생산물들이다. 이러한 사회적 생산물들은 A, B, C와 같은 사회 구성 주체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때 A는 기업, B는 시민, C는 최소수혜자를 상징한다. 여기서 최소수혜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최소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로, 장애인, 고아, 노약자, 미혼모, 미숙련 노동자 등이 포함된다. 이들 사회 구성 주체들에 대한 분배 문제는 오래된 논의 사항이다. 그렇다면 X는 무엇인가? X는 현대 사회에서 세계적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국적 기업 정도가 되겠다. 이들은 거대 자본력을 바탕으로 국적을 초월하여 경제 활동을 수행하는 초국가적인 형태를 띤다.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으로는 코카콜라, 나이키, 맥도날드, 마이크로소프트, IBM, 제너럴 모터스 등이 있다. 다국적 기업의 자본력과 경영 능력은 국내 기업에 위협이 된다.

 

논점을 다시 정리해보자. 무인도의 A, B, C의 사례가 던지는 질문의 핵심은 이것이다. 다국적 기업의 위협 속에서 개별 국가는 어떤 분배 방식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A, B, C가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이 결정해 달라고. 당신은 어떤 방안을 선택할 것인가?

 

 

A에게 사과를 몰아주어 X에게 맞서게 해야 한다는 <방안1>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이 된다. 반면 C의 생명의 위급함을 고려해서 C에게 사과를 우선 분배해야 한다는 <방안2>는 후기 자본주의의 입장이 된다. 우선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거부하고 시장의 자율을 신뢰하는 체제다. 여기서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말은 세금의 축소를 의미한다. 세금을 줄이면 국가의 재정이 나빠지고 당연히 복지의 수준도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복지 수준이 낮아지면 복지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혜택도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세금이 줄어들면 부유한 개인이나 기업은 그만큼 기술 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가 있다. 그리고 기술에 대한 투자는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이러한 경쟁력은 외국의 공격적인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시장에 대한 간섭을 줄이기 위해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이 '성장중심정책'이다.

 

반대로 후기 자본주의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추구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부유한 개인과 기업의 세금이 늘어난다. 높은 세금은 부유한 개인이나 기업으로 하여금 기술 투자 비용을 줄이게 하고, 이로 인해 기업과 국가가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외국의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할 수 없어지고, 장기적으로는 다국적 기업에 시장을 잠식당하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세금이 증가하면 이를 통해 국가의 재정 상태가 좋아지고, 국가는 충분한 재정을 사용하여 사회적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다. 즉 복지 수준을 높이고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분배중심정책'이라고 한다.

 

 

* Simplification

- 성장중심정책 (신자유주의) : 장점: 기업, 국가 경쟁력 강화. 단점: 사회적 약자 도울 수 없음.

- 분배중심정책 (후기 자본주의) : 장점: 사회적 약자 도울 수 있음. 단점: 기업, 국가 경쟁력 약화.

 

 

정리하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논의되는 두 경제체제는 신자유주의와 후기 자본주의이고, 이 두 체제는 정부의 개입 정도에 따라 나뉜다. 우선 신자유주의는 세금을 낮춰 기업과 국가가 우선 경쟁력을 갖추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 전체를 우선 '성장'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복지는 성장이 이루어진 후에 시행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복지가 줄어들면 그만큼 노동자나 농민, 서민, 장애인, 노인, 사회적 약자 등 사회적 소외계층들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후기 자본주의는 세금을 높여 우선 사회적 소외계층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유한 소수만을 위한 성장보다는 사회 전체의 고른 '분배'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복지를 위해 세금을 높이면 자본을 소유한 개인과 기업의 노동 의욕과 투자 의욕을 저하시켜, 기업이 기술 개발 및 시장에 투자하는 비용이 줄어든다. 전체적으로 볼 때,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은 낮아질 것이다.

 

이렇듯 성장과 분배는 기본적으로 반비례의 관계를 갖는다. 성장을 추구하면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반대로 분배를 추구하면 성장에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성장이나 분배를 주장하는 입장이 다른 입장을 절대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을 주장하는 입장은 우선 성장을 시키고 이후에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분배를 주장하는 입장은 우선 분배가 이루어져야 이후에 성장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성장과 분배는 대립되고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다. 문제는 시기다. 언제 분배할 것인가? '우선' 분배하자는 입장과 '이후'에 분배하자는 입장의 거리가 너무도 멀어 보인다. 당장 오늘의 삶이 궁핍한 이에게 이후에 찾아올 미래 사회의 성장은 무의미하다. 또한 다국적 기업의 위협에 전력을 다해 저항하며 기술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기업에 우선적인 분배를 위한 세금 인상은 기술 투자 의욕을 저하시킨다.

 

 

우리는 성장과 분배 중 어떤 가치를 중시해야 하는가?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성장과 분배는 분명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 있다. 어떤 가치를 중시해야 하는가는 경제, 사회, 윤리적 차원에서 다각도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정치의 시각에서 먼저 다루어보려고 한다.

 

이제 역사와 경제에 이어서 정치를 알아볼 차례다. 우리는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경제체제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경제체제를 중심으로 성장과 분배의 의미를 이해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에 대해서도 쉽고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p.173~181, 지대넓얕 > 2 경제 > 성장중심정책과 분배중심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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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 목차

 

1. 프롤로그

2. 성장중심정책과 분배중심정책 - 거인의 섬 표류 우화

3. 하이에크와 롤즈 - 어떤 사회가 윤리적인 사회인가

4.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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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30. @ Ghost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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