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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넛지 Nudge - 해제 : 업그레이드된 행동경제학 <넛지> (최정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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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넛지 Nudge - 해제 : 업그레이드된 행동경제학 <넛지> (최정규)

Geo 2018. 2. 5. 02:50

 

[발췌] 넛지 Nudge - 해제 : 업그레이드된 행동경제학 <넛지>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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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주체는 과연 합리적인가? 이것은 어제오늘 제기된 질문이 아니다. 무릇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경제주체를 상정하고 논의를 풀어나간다. 여기서 합리적이라 함은 경제주체들이 여러 가지 선택 대안들을 놓고 어떤 대안이 더 나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를 완비성이라고 한다), 이들 대안들을 놓고 내린 판단이 일관되어야 한다는 것 (이를 이행성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A가 B보다 좋고, B가 C보다 좋다면, A는 C보다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합리적인 경제주체란 어떤 게 자신에게 더 좋은지를 판단할 수 있고, 그 판단이 일관된 사람을 말한다.

 

현실에서 이러한 가정들은 쉽게 무너지고 만다. 취업을 앞둔 졸업생이 A라는 기업과 B라는 기업 사이에서 선택을 내려야 할 때, 어떤 기업이 더 좋은지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가수들의 CD를 묶어 패키지를 서너 개 만든 다음, 이들 패키지를 두 개씩 보여주며 선호를 표시하라고 하면, 이들은 아주 흔히 이행성을 위반해버리곤 한다. 그리고 행동경제학자들이 여러 차례 지적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높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이 바로 코 앞에 있는데도, 그 대안을 쫒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서 그쳐버린다면 행동경제학의 메시지는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양가 없는 이야기에 그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고, <넛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행동경제학자가 처음으로 내놓은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2

 

1970년대 경제학을 지배했던 패러다임은 일반균형론이었다. 이 이론은 경제주체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득만을 극대화하고자 행동하더라도, 이런저런 가저이 충족된다면 이들의 행동이 시장을 통해서 완벽하게 조정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충족되어야 할 가정은 경제주체들간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없을 것, 생산기술에서 규모의 경제가 없을 것, 경제주체들의 행위가 외부효과를 낳지 않을 것 등이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의 현대적 해석이라고도 간주되는 이 이론은, 당시 체제간의 대립을 반영한 것인지 몰라도, 시장이 완벽할 때 얼마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학은 '시장이 완벽하지 않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일반균형이론이 '이런저런 가정이 충족될 때' 시장을 통한 완벽한 조정을 이야기했다면, 1980년대에는 '이런저런 가정이 충족되지 않는다면'이라는 질문이 지배했던 시기였던 셈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야기하는 문제를 파고들어 정보경제학이라는 분야가 개척되었고, 규모의 경제 문제를 다루면서 진화경제학이, 그리고 외부효과를 다루면서 (신)제도경재학이 다시 부흥하기도 했다. 당시 경제 이론의 화두는 그래서 '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었고, 이후 노벨 경제학상은 바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고민했던 학자들이 독점하다시피 할 정도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70년대 일반균형론도 그렇고 그에 대한 80년대의 비판도 그렇고, 그때까지의 경제학에서 제기되었던 질문들은 경제주체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반균형이론은 말하자면 완벽한 경제주체(합리성과 이기성을 갖는)가 완전한 시장에서 행동할 때의 결과를 그리고자 한 것이었고, 80년대의 (신)제도경제학은 마찬가지로 완벽한 경제주체를 상정한 상태에서, 완벽한 경제주체들이 불완전한 시장에서 행동할 때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다. 즉 이 이론들은 경제주체의 외부환경 (즉 시장의 완전함)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경제주체는 여전히 완전하다는 (즉 합리적이라는) 가정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서 경제이론에 수용되기가 그만큼 쉬웠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행동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여러 흐름들은 지금까지는 금지의 영역이었던 경제주체의 완전함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득에 대해서 판단할 때와 손실에 대해서 판단할 때 다른 판단구조를 갖는다는 것 (손실회피, 현상유지 바이어스), 어떤 물건을 획득한 이전과 이후 그 물건에 대해 다른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 (초기부존효과), 먼 미래에 대해서 판단할 때와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 판단할 때의 판단기준이 일관되지 않는다는 것 (시점불일치의 문제) 등이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경제주체들의 비합리성이 합리성으로부터의 일시적인 이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그 효과도 거시적으로 서로 상쇄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향으로 누적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가 예측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의 결과를 양산해낸다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경제학의 '코어'를 공격하기 시작한 셈이다.

 

 

3

 

이 책의 저자 리처드 탈러는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학자이다. 그는 일찍이 <경제학 전망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이라는 학술지에서 <이상현상들 (anomalies)>이라는 제목으로 경제이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소개하는 특집을 주관한 바 있다. 이 특집에 실린 여러 연구 논문들은 경제주체들이 경제학에서의 예측처럼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실에서뿐 아니라, 승마장에서, 노동시장에서, 그리고 금융시장엣의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행동경제학'이 더 이상 변방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경제학자들도 깊은 관심을 갖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중요한 분야로 자리매김하는 데 앞장 선 학자이다.

 

이제 그는 공저자 선스타인과 함께 그러한 발견을 놓고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질문에 대답을 시도하고 있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데도 시장이 완전치 않아서 결과가 신통치 않게 나왔다면 시장의 작동을 보완할 제도를 고안하면 된다. 사람들이 합리적 대응할 것이라는 믿음만 있다면, 정책 설계자는 금전적인 유인체계를 고안함으로써 사람들이 그 유인체계 아래에서 자신의 이득에 따라 행동할 때 바라던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금전적 유인체계에 예측한 것처럼 합리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따라서 행동경제학에서의 발견으로부터 어떤 정책적 결론을 유도할 수 있을지는 계속 열려 있는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 <넛지>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 (혹은 자유주의적 온정주의)라는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사람들이 고정된 선호체계를 갖지 못하고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사람들이 어떠한 맥락에서 현실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면, 약간의 맥락의 변화만으로도 사람들의 상황판단에 영향을 미쳐 그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정책적 개입은 사람들의 행동 자체를 규제하거나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변화를 통해 사람들이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게 하고 그러한 해석 아래에서 자신이 스스로 선택을 내리게 되므로 여전히 자유주의적인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개입을 '넛지'라고 묘사한다. 옆 사람의 팔을 잡아끌어서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게 아니라, 단지 팔꿈치로 툭 치면서 넌지시 어떤 행동을 유도한다는 의미이다.

 

탈러와 선스타인은 행동경제학에서의 발견을 토대로, 그리고 그로부터의 이론화 작업을 거치면서 이제는 그러한 관점에서의 정책적 제안을 하는 데까지 나아가고자 한다. 이제 비로소 행동경제학은 일관된 체계를 갖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완성된 형태의 행동경제학을 지향하고 있다.

 

이들의 정책적 제안에 대해 적지 않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그 중 몇몇은 행동경제학의 이론적 발전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는 경제학의 이론적 발전을 위해서 의미 있는 것들이다. 우선 '넛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즉 약간의 맥락을 변화시켜 사람들의 해석을 변화시키고 그로부터 사람들이 자유롭게 선택하더라도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 있게 되는 경우가 아주 제한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개인의 자유를 손상하지 않는 개입주의가 가능한 영역이 우리 주위에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카페테리아에서 물건을 진열하는 문제를 넘어서 좀 더 심각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은 여전히 자유냐 개입이냐의 '전통적'인 틀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들일 수도 있다. 둘째, 자유주의적 개입주의가 상정하는 합리적 설계자와 무지한 대중이라는 이분법이 주는 곤혹스러움이다. 기존의 경제이론에서 시장의 실패 및 교정을 논의할 때 우리는 합리적인 설계자와 합리적인 대중을 상정한다. 하지만 합리적 설계자와 무지한 대중이라는 대립구도에서 경제주체의 현상이 자칫 조종의 대상인 듯 다뤄지는 구도가 주는 불편함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이 가장 환대받는 분야가 바로 마케팅 전략 분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자면, 완전하지 않은 개인을 전제로 한 자유주의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즉 이참에 자유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논의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4

 

성역으로 간주되었던 경제주체의 합리성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은 흥미롭다. 어쩌면 그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어려운 '수학'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흔히 보이는 사람들 (나를 포함해서!)의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흥미로움을 넘어서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까이다. 나는 행동경제학이 경제학을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합리적인 경제주체와 비합리적인 경제주체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상호작용함으로써 빚어내는 결과들은 아주 중요한 연구주제가 될 것 같다.

 

행동경제학의 메시지가 단지 "사람은 이렇다더라", "기존 경제학은 잘못되었다더라" 등의 파편적인 것에 그치지 않으려면, 행동경제학이 던지는 질문에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넛지>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물론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책에서 제시되는 정책적 제안은 아직까지는 '진행형'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서는 좀 더 이론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에서 성급한 정책적 제안이라는 평가가 내려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넛지>는 행동경제학의 문제제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행동경제학에 대한 '진지한' 평가를 내리는 게 비로소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들의 정책적 제안을 통해 역으로 이들의 작업을 하나하나 되짚어볼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내놓는 정책적 제안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면서, 사회과학의 주인공인 '인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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